오랜만에 나의 가장 어린 친구 A를 만나기로 했다.
물론 앞으로 더 어린 친구가 생길 수 있겠지만 (요새 말을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나와 친구가 하고 싶은지 반말을 한다.)
현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 2년 차가 된 A는 내 친구 중 가장 어리다.
친구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30대 혹은 40대이다.
그녀로 인해 나의 친구들 평균 연령이 훅 낮아졌으니 12년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 A는 나에게 귀한 인연이다.
약속 당일날 아침 , 조금은 이른 시간, A는 나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 나의 기상 여부를 확인했다.
"일어났나요?"
"네~"
깨어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A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A는 일이 생겨 약속 시간을 미룰 수 있겠냐고 말했다. 사정은 나중에 만나서 설명하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했고 약속 시간은 늦은 저녁으로 조정되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전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A의 급한 사정이 뭔지 걱정이 들었다.
약속을 아예 취소하거나 다른 날로 미루는 대신 약속 시간만 조정해야한다니 큰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 A는 변경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 없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그녀의 얼굴은 밝고 싱그러웠다.
사람의 신체는 24세를 기준으로 성장을 멈추고 노화로 전환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만날 때마다 깡마른 나에게 살 좀 찌라고 스트레스를 주던 고모가
포동포동 살이 올라 예쁘다고 칭찬했던 시기에 나는 23살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나에게 더이상 예쁘다고 해주지 않는다.
나의 몸무게는 그 이후로 하향세였고 나는 지금 멸치라 불린다.
여전히 건강하고 귀여운 그녀를 보니 A를 기다리며 걱정했던 마음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A가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했던 약속 변경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의 사정은 내 예상밖이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쓸모없는(현재는 그렇다.) 땅을 비싸게 매입하였고 오늘 아침 부모님이
알게 되셔서 온 가족이 함께 땅을 확인하고 왔다는 것이다.
A는 그동안 2년 가까이 회사생활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땅을 사는데 쏟아부었다고 했다.
A의 부모님은 상의도 없이 땅을 사버린 딸의 행동에 섭섭함과 실망감을 느끼셨고
한순간에 가치없는 땅으로 바뀌어 버린 딸의 피, 땀, 눈물 같은 돈이 너무 아까워 속상해하셨다.
그리고 나는 A의 대담함과 실행력에 놀랐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탐색하는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A가 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A는 최근에 '더 해빙'이라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이 책은 나도 2달전 유명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받아 읽어 봤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 어디에도 부동산 투자를 장려하는 내용은 없었다.
물론 중간에 저자 중 하나인 이서윤 님의 조언을 받아 투자에서 큰 부를 이룬 사람의 사례는 나온다.
정확히 책의 무엇이 A를 부동산 투자를 결심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A가 저자처럼 처럼 부와 성공을 이루고 싶어 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해빙' 이라는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책을 읽은 후 원서를 사서 두 번 읽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의 어린 친구 A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나 또한 겪었다.
내가 A처럼 부동산을 구매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 읽은 지 두달 정도 지났지만 내가 당시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홍주연 작가는 부자가 되고 싶지만 부자가 될 방법을 모른다.
그녀는 부자가 될 방법을 고민하다 오래전 기자생활 중 인터뷰했던 부자들의 조언자, 이서윤 님을 떠올린다.
홍주연 작가는 어렵게 그녀를 만나 부와 성공의 비결을 전해 듣게 된다.
그 비결 덕분인지,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그녀는 직장을 나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본인의 커리어를 바꾸고 부와 성공을 얻는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 기막힌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우리 모두는 귀인을 만나고 싶어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우리 모두는 귀인 혹은 영웅을 바라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악당을 물리쳐줄 영웅을 바라거나
혹은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줄 귀인을 바라고 있다.
사람은 살면서 악당을 마주치게 된다. 자주 마주친다.
악당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 삶의 악당은 사람일 수 있고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허구한 날 나에게 폭언을 퍼붓는 상사나 끊임없이 나를 험담하는 동료,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본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악당은 나를 괴롭히거나 목표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요소를 말한다.
책을 읽은 후, 나 또한 흥분되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A도 아마 그랬으리라. 나처럼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들떴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나의 인생을 바꿔줄 귀인을 찾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조급해졌을 거다.
그리고 그녀는 기특하게도 가만히 앉아 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부자가 될 방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가 나빴지만.
A와 헤어진 후 나는 A에게 내가 친구로서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말 대신 A의 회사로 책을 한 권 보내기로 했다.
책 한 권을 읽고 어떻게 귀인을 찾을 수 있겠냐마는 귀인을 찾을 작은 단서라도 찾게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