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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수원 화성을 걷다

by 씩씩한 세오 2020. 11. 4.

수원 화성을 걸었다.

장안문에서 시작해서 성곽을 따라 쭉 한바퀴를 돌았다.

햇볕은 강했으나 바람은 몹시 강하게 불었다.

중간중안 꽂힌 깃대의 깃발이 정신없이 펄럭거렸다.

바닥에는 낙엽들이 크게 원을 그리며 돌다가 바람이 그치면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졌다.

낙엽이 지금 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져서 속이 상했다.

깃대 위의 깃발은 바람에 흔들려도 저렇게 우아한 모습인데 낙엽은 왜 저렇게 흔들려야 할까.

그러다 문득 흔들리는게 문제가 아니라 흔들린 후 어떻게 변해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처럼 바람에 휘둘려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도 괜찮다.

다만 바람이 끝났을 때는 내가 원하는 그 위치에 내려 앉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건지 뭘 원한는 건지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그냥 걷자고 올라온 수원 화성인데 생각보다 긴 여정이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돌자고 다짐했는데 중간중간 고민과 불안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배가 고팠다.

복잡했던 머릿속은 잠잠해지고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본능은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니 중간중간 건축물 들이 나온다.

마룻바닥을 오를때는 신발을 벗으라는 안내문이 써져 있었다.

신발을 벗기 귀찮아 그냥 갈까 하다가 왠지 아깝다는 생각에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몇걸음 옮겼을 뿐인데 마루 위와 밖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고개를 드니 천정에 나무들이 얽혀 있는 모습과 무늬들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물을 받힌 나무 기둥에 길게 그어진 틈새가 보인다.

발바닥에 닿는 차갑고 딱딱한 나무는 내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아래로 움직인다.

 

내가 그동안 별거아니라며 다 아는 거라며 대충 지나쳐온 모든 것들도 이랬을까?

실제로 발을 딛어보면 이렇게 낯설고 새로운 모습이 보였을텐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다 안다는 착각으로 흘러보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