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 대장증후군,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된 상태가 되면 배가 꼬르륵꼬르륵 아프고 화장실에 달려가게 만드는 증상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겪었다. 내가 처음 이런 증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 시험기간이었다.
시험 문제를 풀다보면 저절로 긴장이 되고 초조해져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시험 보는 중간에 화장실을 간다면 매우 곤란하다. 우선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켜 선생님께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선생님이 나의 급한 사정을 이해하셔서 화장실을 가는 것을 허락하신다고 해도 시험이 종료된 이후에나 교실에 들어올 수 있으므로 만약 시험을 다 풀지 못했다면 미완성인 답안지를 내야 한다.
나는 두 가지 모두 감수할 용기가 없으므로 무조건 참았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냅다 뛰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겪고 난 날은 시험 성적이 잘 나왔다.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욕심이 줄고 설렁설렁 대충 공부를 한 날이면 아무 일없이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결국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마음과 열심히 공부한 것이 시험 문제를 푸는 순간 무용지물이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섞여서 내 배를 꼬르륵꼬르륵 아프게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나는 자주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시달렸다. 친구와 밥을 먹다가도 회사에서 중요한 미팅 하다가도 땀을 삐질거리는 상황을 자주 겪었다.
특히 아침에 자주 신호가 온다. 시루떡 같은 지하철에 겨우 몸을 밀어 넣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뱃속에서 신호를 보내면 너무 슬퍼진다.
조금만 가면 되는데 뱃속에서는 내 사정도 이해 못하고 무조건 화장실만 외쳐된다.
가는 도중에 내려서 화장실을 다녀오면 적어도 15분은 걸릴 텐데... 지하철 오는 시간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어 되돌아온다고 해도 사람이 많으면 다시 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다 정 견딜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다.
내려서 무조건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
가끔씩 회사 사람들에게 나의 급한 사정이 목격되기도 했다.
'아까 아침에 너 봤는데. 근데 왜 거기서 내렸어? 회사까지는 몇 정거장 더 남았는데 네가 갑자기 내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럴 때는 그냥 웃으며 '내릴 역을 착각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
그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장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조언을 들을 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기간이면 내 뱃속은 늘 평온했다.
어떨 때는 너무 소식이 없어서 변비에 걸리기도 했다.
어느새 나의 뱃속은 나의 마음을 확인하는 측정기가 되었다.
뱃속이 평온할 때는 내가 요새 마음이 편안하구나 싶다가도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되나 고민이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 조용했던 뱃속이 난리가 났다.
새벽이면 배가 꼬르륵거려서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 끙끙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쩔 때는 화장실을 세 번도 가야 했다.
외출을 한 것도 아닌데 내 구역 내 집에서 이렇게 뱃속이 요동친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매우 편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 순간에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선택한 일인데 오히려 왜 더 힘들게 느껴질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나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안에 기적을 발견하고 넘치는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한다.
마구 흔들어 꽃가루가 날리는 스노볼을 가만히 바닥에 내려놓으면 꽃가루가 가라앉고 투명하고 맑은 유리구슬이 된다.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마음속에 꽃가루가 날린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자 블로그에 글을 쓴다.
언제쯤이면 나는 '지금이 바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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