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심해지니 며칠째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는데 엄마에게 대부도로 드라이브 갈 것을 제안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내 나이를 물었다.
"너가 올해 몇이니?"
" ** 이지"
엄마는 세월이 빠름을 다시 실감했는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말했다.
"내가 지금 니 나이때,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지. 그때는 아이셋을 데리고 혼자 살아갈 일이 막막해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어. 제발 10년만...10년만 빨리가라고 매일 빌었어."
맞다. 그때 당시 엄마가 이모와 전화를 하면서 그렇게 말하던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우리 아빠는 너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어느날 속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위암 말기였다.
너무 많이 암세포가 퍼져버려서 병원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때 남동생은 겨우 돌을 넘긴 나이였다.
엄마는 매일매일 우리 삼남매가 어서 자라길 빌었다.
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이 유치원에 갈 정도로 자라면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빠가 가고 난 후 몇년이 지나자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충주로 갔다.
그곳에는 외갓집이 있었다.
나는 지금 나 하나 돌보는 것도 버거워 매일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데... 당시 아이셋을 혼자 부양해야했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데... 얼마나 힘들고 막막했으면 10년이 어서 빨리 흐르기를 바랬던걸까.
혼자 말없이 운전하며 엄마가 당시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고 있으니 엄마가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때 니네 아빠가 남겨준 천만원이 있었는데, 이모부가 사업하는데 돈이 필요해서 너희 이모가 빌려갔어. 그리고 매달 이자로 30만원을 보내줬지. 그때 당시 그 돈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덕분에 너희 아빠 가고나서 1년 정도는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
이모부? 이모부는 이미 오래전 사업이 망해서 지금은 굉장히 어렵게 지내고 사는데.
어릴때 이모네 집에 들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아빠 간병을 하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한동안 이모네 집에 우리 삼남매를 맡겼다고 한다.
성남에 있던 기억속의 이모네 집은 좋았던것 같다.
"그때는 사업이 잘 되서 돈을 잘 벌었는데... 그렇게 망해버릴줄 누가 알았겠니. 참, 그때 돈이 들어올때 잘 모아둬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망해버린다니. 참 안타까워. 니네 이모부가 다른 건 몰라도 그때 돈을 빌려가고 이자를 매달 보내줘서 고마웠는데 말이야."
그러다가 또다시 부자의 그릇이 떠올랐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릇이 크고 넓은 사람은 돈이 들어와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머무르지만 그릇이 얕고 작은 사람은 돈이 들어와도 금새 나가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릇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모부는 그릇이 빈약했기때문에 돈이 들어오는 운을 만났어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나는 어떤가? 나는 돈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나?
짐작하건데 나는 아직 돈을 담을 그릇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것 같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소유한 재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위축된다.
최근에 경제적 활동을 못하니 돈이 점점 줄어든다.
불과 일년전만해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때문에 나는 돈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짧은 시간 사이에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
어쩌면 나는 그릇을 키우는데 소홀했기 때문에 돈이 나에게 머물지 못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릇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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