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시작하고 구체적인 아이템이 선정되지 않아 한 달 넘게 창업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개발자인 라이언님은 일단 본인이 가지고 과거 만들어둔 시스템을 데모버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라이언님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까지 조사라는 변명으로 집에서만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진정한 창업은 영업부터라는데 영업담당인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 벌벌 떨고 있다니 너무 미안하다.
대부분의 창업은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퇴직한 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 가족들도 슬슬 내가 재취업을 했으면 하는 말을 넌지시 내보인다.
지금이라도 날 받아주는 회사에 들어가 '감사합니다.'하고 일해야하나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지만...
흠, 나는 안타깝게도 직장인은 안 맞아요.
나는 10년 가까이 국내외 회사에서 근무를 해봤으며 이직만 3번을 했다.
그러니까 이건 성급한 판단은 아닐거다.
동료들과 일을 하는 것은 즐겁다. 협력해서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좋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과가 좋아 상사에게 칭찬받을 때면 내가 이전보다 성장한 것 같아 우쭐해지기도 한다.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을 보면 든든하고
어쩌다 가족들끼리 식사를 할 때면 턱 하니 계산대에 가서 카드를 내밀 때면 돈 버는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항상 한 가지가 나를 괴롭혔다.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인력이다.'
첫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는 재계약 일주일을 앞두고 해고 통지를 받았다.
당시 회사는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 자회사였다.
계약직 고용기한을 4년 이상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4년 이상된 계약직 직원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동료는 일을 잘했다.
독립적으로 혼자 담당하는 업무도 있었고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그래서 다들 그녀가 정규직 전환이 될 거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계약 만료가 코앞임에도 회사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기에 본인도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같이 점심 식사를 한 후 그녀가 근처 옷가게에 들러 새 옷을 사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정규직이 되면 더 단정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면서 옷을 신나게 골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를 통보받았다.
나는 동료가 회사를 그만둔 지 몇 달 후 제 발로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내가 퇴직서를 제출한 지 보름이 지나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계약직 직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흠... 그냥 있을걸 그랬나?)
퇴직사유는 학업 및 자기 계발이었지만 사실 진짜 퇴사 사유는 '함부로 취급받고 싶지 않아!'였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싱가포르로 나갔다.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직장도 구하지 않고 28 사이즈 캐리어 하나 들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국으로 떠났다.
싱가포르에서 보내는 첫날밤, 난생처음 묵어보는 4인실 숙소 침대에 누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안락하고 편안한 집을 나와서 뭐 하는 거지?'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싱가포르에 체류한 지, 2달 만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좋은 회사를 말이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니 모든 게 괜찮아 보였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처음 몇 달은 미팅에 들어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내 채용면접에 참석한 면접관이 놀랄 정도로 입사 후 나의 영어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때 사람은 극한 환경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What doe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고 나는 그때 정말 죽을뻔했다.
집주인이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되어 계약기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나가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매끄럽지 못한 거래처 변경으로 방치되었던 업무가 갑자기 몰려 들어와 매일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근무를 했다.
설상가상 지독한 감기에 걸려 기침이 계속 나왔는데 아무리 기침을 뱉어도 시원하지 않아 괴로웠다.
한밤중에 기침이 나와 잠을 깨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너무 기침을 해 갈비뼈 부근이 아팠다. 갈비뼈가 부러진 줄 알았다.
나중에 듣기론 기침이 심하면 압력이 가해져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경우가 진짜 있다고 한다.
더 심각했던 것은 한 달 동안 생리가 계속된 것이었는데 이때는 '정말 큰일 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이 재밌었다.
하루하루 내가 성장해가는 모습과 뒤죽박죽 하던 업무가 정리되어 가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그렇게 좋은 회사를 다녔지만 시간이 지나자 첫 번째 직장에서 느꼈던 고용에 대한 회의감과 불안감이 다시 몰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나의 상사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나는 말단 직원이었기 때문에 윗분들의 일은 잘 몰랐다.
다만 어느 날 나의 동료가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다.
인사이동 공지가 발표되며 새로운 상사가 합류했는데 원래 있던 상사 거취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비슷한 일을 두 번 겪으니 이젠 더 이상 큰 회사는 다니기 싫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 같은 열정을 되살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쓸데없이 주변 사람에게 쉽게 감정 이입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서있는 줄 맨 앞에 사람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데 계속 그 줄에 서 있어야 하나요?
무엇보다 회사에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은 많고 회사 밖에는 얼마든지 나를 대체할 인재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고만고만한 존재가 되긴 싫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퇴사 사유는 '결혼하러 한국에 갑니다.'였다.
실제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들어와 나는 잠시 공무원 준비를 했지만, 어쩐 일인지 나의 열정이 피어날 줄 몰랐고 허송세월만 보내게 되었다.
중간에 다른 외국계 회사를 다니긴 했지만 그곳에는 진상이 하나 있었다.
툭하면 사람의 욕망에는 남녀 구분이 없다며 불편한 성적 발언을 내뱉거나 술 먹으면 가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진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불편해졌고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군가는 진상을 피하면되지 왜 니가 회사를 나오느냐며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내 직속 상사이자 회사의 임원이고, 회사 대표격인 법인장과 파워게임을 하면서 나에게 줄 똑바로 서라며 경고를 날린다면, 내 팀 동료들은 모두 다른 국가에 흩어져 있어 가끔 하는 회식에 참석하는 사람이 그 임원과 나 단둘뿐이라면, 무엇보다 ...일하면서 상사에게 당연히 해야하는 구두보고를 피하고 메일로 보고하고 있는 한심한 나를 발견했다면 퇴직하는게 맞지 않았나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닌 회사는 강소기업 라벨이 붙은 회사였다.
흠. 이 회사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깨줬다.
나는 내가 큰 회사에서 스스로 작은 부속품처럼 느껴져 안 맞는 줄 알았는데 작은 회사와도 안 맞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으나 그중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이유는 이 회사가 가족 같은 회사였다는 것이다.
써놓고 보니 '내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오도 가도 못할 처지라 그렇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이 나버렸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내 마음속에 작을 불씨를 하나 보았기 때문이다.
고목나무처럼 메말랐던 열정이 아주 조금 고개를 내미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나는, 예전에 싱가포르에 도착한 첫날밤처럼 두렵고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안 좋은 일들이 빵빵 터지며 한꺼번에 몰려온다.
(최근에 고소장을 셀프로 써서 경찰서에 제출해봤다.)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벗어난 내가 한심스럽다가도 이 순간을 견디면 무언가 내가 바라던 일이 실현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What doe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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